도서명 : 동물 신학의 탐구 :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 
저자명 : 앤드류 린지 
저서/번역서구분 : 번역서 
번역자 : 장윤재 
출판사 : 대장간 
출판년도 : 2014-10-04 
저자 E-Mail or. Phone Number : shalom@ewha.ac.kr 

역자 서문

 

인간들이여, 당신들이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뽐내지 마십시오. 동물들은 죄를 짓지 않지만, 인간들은 자신의 위대함을 가지고 땅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우리나라에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의 수가 1,200만 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 4명 당 1명이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해마다 휴가철이나 연휴가 되면 전국적으로 수 만 마리의 반려견들이 버려진다. 한 해 평균 약 10만 마리가 버려진다. 대개 늙고 병든 강아지들이다. 반은 안락사나 자연사로 죽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 숱한 생명들의 죽음을 어찌할 것인가. 우리나라도 동물에 관해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고아 수출 1위일 뿐만 아니라 유기견 수출도 1위다. OECD 국가 중 버려진 개를 해외로 입양 보내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몇 년 전 캐나다로 입양 간 유기견 티파니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티파니는 주둥이가 없다. 누군가 티파니를 잡아먹으려고 철사로 입을 묶은 채 몽둥이로 때렸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지만 철사에 묶여 있던 입이 몽땅 잘려나갔다. 이 사연은 인터넷을 통해 해외까지 알려졌고 캐나다의 한 대학병원이 데려가 수술을 했다. 캐나다 전역에서 입양 신청이 쇄도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도덕적으로 얼마나 진보했는가. 고양이가 사람을 보고 도망가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개와 고양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들도 문제다. 20101123일 안동에서 시작한 구제역(口蹄疫, foot-and-mouth disease)은 곧장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불과 몇 달 사이에 우리는 도합 600만 마리의 가축들을 산 채로 땅에 묻으며 한국판 아우슈비츠를 연출했다. 국제청정지역지위 유지를 위해, 그리고 고작 연간 20억 원 돼지고기 수출을 위해 3조원을 쏟아 부으며 무참한 살육을 저질렀다. 자연 상태에서는 구제역에 걸린 가축의 50-90%가 스스로 치유하고 벌떡 일어서는데, 그 날 갓 태어난 새끼부터 갓 출산한 어미까지 한꺼번에 땅에 묻어버렸다.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벌인가 /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악인가 / 아니 사람으로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죄인가 / 미안하다, 용서하라, 잘 가라.” 임옥상은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글에서 당시 구제역 파동으로 죽어간 수많은 생명들에게 이렇게 용서를 구했다. 용서를 구할 수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 날 산 채로 땅에 파묻혀 울부짖던 돼지들의 울음소리에서 우리는 그 옛날 아벨의 핏소리를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세기 54:9)라고 물으셨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네 동료 피조물들을 어디 묻었느냐고 물으실 것이다.

이 책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우리와 함께 사는, 하지만 인간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는 우리들의 동료 피조물’(fellow creature) 동물의 권리와 복지와 해방에 관한 책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동물은 이제 우리사회와 학계의 한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사실 동물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마다 500억 마리의 동물이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물고기를 빼면 매년 250억 마리의 동물이 인간의 음식이 되기 위해 죽고, 매년 4천 만 마리의 동물이 모피가 되기 위해 죽는다. 먹고 입는 것만이 아니다. 다음의 열거하는 제품들을 이름을 읽어보고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찾아보라.

살충제, 부동액, 브레이크액, 표백제, 교회 초, 방취제, 목욕용 발포제, 탈모제, 눈 메이크업, 잉크, 선탠오일, 손톱 광택제, 마스카라, 헤어스프레이, 페인트, 지퍼 윤활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 많은 상품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모두 동물을 이용한 독성 실험을 거친 것들이라는 점이다.

토끼눈 실험이라는 게 있다. 1940년대에 드레이즈(J.H. Draize)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 시행되었기 때문에 드레이즈 테스트’(Draize Test)라고도 불린다. 어떤 물질이 토끼 눈에 들어갔을 때 어떤 자극을 주는지 평가하기 위해 개발됐다. 토끼들은 머리만 내밀고 고정되는 장치에 꽁꽁 묶인다. 논을 부비거나 긁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표백제나 샴푸 혹은 잉크를 한쪽 눈에 투입한다. 대부분 각막 또는 내부 구조에 심각한 상처를 입힌다. 완전히 시력을 상실하기도 한다. 이 때 토끼는 급히 눈을 깜빡거리고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직여 도망가려 한다. 하지만 단단한 조임 장치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 실험에 토끼가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끼 눈이 커서 관찰하기 쉽고, 무엇보다 토끼의 눈에는 눈물관이 없어 투여된 물질이 빠져나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크고 예쁜 눈이 토끼에게는 화가 됐다.

이 정도의 동물실험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세계 명문대학들과 유수한 기관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동물실험들의 이름을 소개해보겠다. 쥐를 33일간 잠재우지 않기(시카고대학), 갓 태어난 생쥐의 앞다리를 잘라 그럼에도 자기 몸을 단장하는지 관찰하기(오레곤대학), 10일 된 새끼고양이 양 눈을 꿰매 시력상실의 영향에 대해 관찰하기(옥스퍼드대학), 생쥐의 두뇌에 헤르페스 바이러스 주사하기(케임브리지대학), 원숭이에게 신경가스, 청산가리, 방사능, 총알 혹은 미사일 쏘기(미 국방부), 자동차 충돌실험에 돼지나 원숭이 이용하기(GM), 어미 뱃속에 있는 새끼 돼지 태아의 목을 자르고 그것이 임신한 암퇘지의 인체 화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관찰하기(미 농무부), 비글이라는 사냥개에 플루토늄 주사하기(하버드대학). 계속해야 할까...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한 모든 인간은 나치다라고 세계적인 동물 윤리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말했다. 간디는 이렇게 물었다. “왜 사람들은 건물이나 예술작품과 같은 인간의 창조물을 파괴하면 야만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신의 창조물을 파괴하면 진보라고 치부하는가?” 실로 문명의 진보동물의 고통사이에 깊고도 분명한 함수관계가 있다. 인간의 진보는 동물에 대한 잔인성과 정비례한다. 그리고 21세기 말에 가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의 3분의 2가 인간에 의해 멸종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동물에 대한 폭력과 학대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것이 어쩌다 일어나는 사적인 일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제도적인 일이라는 사실이다. 동물학대는 몇몇 개인의 병리적 현상이 아니다. 동물에 대한 학대는 사회적으로 합법화되고 제도화된 폭력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의도적인 무지’(wilful ignorance) 속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보고도 못 본 체 한다. 듣고도 못 들은 체 한다. 아니 우리는 우리 앞의 동물을 보지 못한다. 저 밖에 움직이는 물체로서 볼지는 모른다. 하지만 살아있고 지각이 있는 존재로서 동물을 보지 못한다. 우리의 언어, 우리의 철학, 우리의 과학, 우리의 종교, 우리의 문화가 그들을 보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의 문제는 우리의 철학과 윤리와 종교의 문제다. 인류의 역사는 도덕적 지평의 확대의 역사라 말할 수 있다. 여성에서 흑인으로, 가난한 사람으로, 장애인으로, 동성애자로 도덕적 배려와 책임의 지평이 확장되어 왔다. 동물에 대한 현대 서구 학계의 관심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옥스퍼드대학의 철학과 졸업생인 존 해리스(John Harris)와 로슬린드 고드로비치(Roslind Godlovitch)1971년에 낸 동물, 인간, 그리고 도덕 Animals, Men and Morals이 그 효시가 됐다. 이어 1975년에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Animal Liberation, 1976년에 앤드류 린지(Andrew Linzey)동물권 : 기독교적 평가 Animal Rights: A Christian Assessment), 그리고 1977년에 스티븐 클락(Stephen Clark)동물의 도덕적 지위 The Moral Status of Animals가 연달아 출간되면서 동물에 대한 현대 서구 학계 연구에 불을 붙였다.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은 한국에 일찌감치 소개되었다. (인간사랑 출판사 1999, 연암서가 출판사 2012.) 싱어는 이 책에서 문제의 핵심이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는가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싱어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 입장에 서 있다. 이 입장은 쾌락은 증진시키고 고통은 감소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등의 원리다. 즉 어떤 한 존재의 고통은 다른 존재의 동일한 고통과 평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그의 유명한 종()차별주의(speciesism)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동물이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도 고통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 종차별주의다. 싱어는 성차별주의나 인종차별주의에는 반대하면서 종차별주의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위선이라고 잘라 말했다.

싱어의 공리주의의 기원은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다. 그는 학대 받는 동물의 처지를 흑인 노예들의 처지와 비교하면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지배가 더 이상 정당한 통치가 아니라 학정이라고 고발한 유럽 최초의 사상가가 되었다. 그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가 동물은 인간과 달리 이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따라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직접적인 의무는 없다고 말할 때, “문제는 동물들이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라고 반박했다. 싱어는 이러한 벤담의 사상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오직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그의 책 동물해방을 이끌어나간다. 그는 여기서 어떠한 자연권 사상이나 천부적 권리에 호소하지 않는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는 권리에 대한 철학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동물의 평등을 옹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동물에 대한 공리주의적 접근 말고 또 다른 접근방법이 있다. 그것은 의무론(義務論, deontology)이다. 의무론적 윤리는 칸트에 의해 수립되었는데, 공리주의와 달리 어떤 행위의 도덕적 올바름이 행위의 결과에 있지 않고 행위 자체의 올바름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의무론적 입장에서 동물권리론을 개척한 사람이 미국의 철학자 톰 리건(Tom Regan, 1938- )이다. 그는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한 삶의 주체’(subjects of a life)로서 자신의 타고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삶의 주체란 생명이나 의식의 여부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감각, 과거에 대한 기억, 미래에 대한 감각, 정체성에 대한 감각의 유무 등을 가리킨다. 리건의 동물권리론은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칸트는 동물에게는 이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인간은 동물에게 직접적인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단지 동물을 인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리건은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자신의 동물권리론의 철학적 기반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대 서구의 동물에 대한 담론이 벤담싱어로 이어지는 공리주의 계보와 칸트리건으로 이어지는 의무론의 계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이 책의 저자 앤드류 린지는 한때 공리주의의 입장에 선 적이 있으나 이와 결별하고 리건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동물권’(animal rights)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신의 권리로서의 동물권신의 정의에 기초한 관대함의 윤리라는 독특한 윤리를 제안하고 있다.

린지는 싱어의 공리주의적 접근을 비판한다. 린지가 보기에 공리주의는 차갑고 불충분하다. 물론 벤담에 의해 발전되고 싱어와 같은 현대 철학자들에 의해 계승된 공리주의는 동물이 당하는 고통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린지는 싱어의 공리주의에 아주 중요한 두 요소, 즉 연약함(vulnerability)과 무구함(innocence)에 대한 고려가 결정적으로 빠져 있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싱어는 최소 한 달 이상 된 태아만 우리의 도덕적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한 달이 안 된 태아는 아직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린지가 보기에 그런 공리주의적 입장은 유아나 동물과 같이 역사적으로 도덕적 권리를 박탈당해 온 존재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되지 못한다. 린지는 우리의 도덕적 의무를 특별히 그런 연약하고 무구한 존재들에게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초지일관해서 연약하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는 싱어가 말하는 것처럼 평등한고려가 아니라 더 큰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린지는 약자에게 도덕적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의 입장은 다음의 한 문장 안에 압축되어 있다. “윤리에서 내가 견지하는 이론적 입장은 약자와 상처 입기 쉬운 자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권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앤드류 린지의 동물권 신학의 핵심인 관대함의 윤리’(ethics of generosity).

약하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존재에게 더 큰 도덕적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는 말은 이제 한국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교황 프란체스코 1세가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것이 아니었던가. 그는 말없이 병들고 약하고 무기력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 편에 섰다. 한국인들은 종교를 떠나 그런 모습에서 종교가 줄 수 있는 감동과 메시지가 무엇인지 보았다.

그런데 린지가 말하는 관대함은 동정심이나 온정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신의 권리신의 정의라는 확고한 신학적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린지에게 동물권은 신학적으로 신적 권리’(theos-rights)이다. 동물권은 동물이 스스로 획득했거나 아니면 인간이 동물에게 부여한 어떤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로서 하나님이 가지 고유한 권리다. 그러므로 동물권을 침해하는 것은 곧 린지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권리에 대한 침해가 된다. 하지만 린지는 권리담론을 넘어간다. 그는 동물권리론을 개척한 리건과 협력하면서도 그와 달리 권리 위에 관대함을 주장한다. 이 관점은 그가 성서적 통찰에서 얻은 것이다. 그가 성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관대하심이다. 하나님의 관대하심 혹은 자비는 특별히 예수의 포도원주인의 비유’(마태복음 20)에 명확히 드러났다. 포도원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unto the last) 모두 똑같은 임금을 주어 그 날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주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더 일한 사람이 더 받고, 덜 일한 사람은 덜 받는 게 인간이 생각하는 정의다. 그것이 이른바 공정으로서의 정의. 하지만 포도원주인의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는 달랐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대하심 혹은 자비에 기초한 정의다. 그것은 업적과 관계없이 필요에 따라 삶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은총의 정의다. 가장 약하고 무고한 자를 우선적으로 감싸는 적극적 정의다. 린지는 동물권 문제가 단지 인도주의의 확장이나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런 정의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모두를 위한 정의’(justice for all)가 문제의 핵심임을 누차 강조한다.

린지가 칸트-리건으로 이어지는 의무론적 윤리의 입장에서 동물의 권리를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신적 권리와 정의의 차원으로 승화시켜 자칫 개인주의적으로 흐를 수 있는 권리 담론 위에 관대함혹은 자비 혹은 연민의 윤리를 결합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린지의 동물권 신학의 또 하나의 특징이자 장점은 그가 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쟁을 철저히 이성적으로 전개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동물과의 감성적 연대나 동물에 대한 돌봄의 윤리혹은 연민의 윤리가 중요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동물권 반대자들의 논리와 논거를 이상적으로 반박하고 혁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는 지금까지의 동물에 대한 학대와 착취가 동물이 인간과 다르다는 사실, 차이에 대한 강조 위에 이루어졌음을 인식한다. 린지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도리어 특별한 도덕적 배려의 원리가 된다고 논리를 뒤집는다. 지금 동물에 대한 인간의 학대는 두 개의 검증되지 않은, 그리고 사회적으로 영속되는 전제 위에 이루어진다. 첫째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고 특권적 지위를 누린다는 전제이고, 둘째는 동물은 도덕적 권리의 합법적 주체가 아니라는 전제이다. 특히 이 두 번째의 전제는 바로 동물이 인간과 다르다는 것을 기반으로 정당화 되고 있다. 우리는 동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혹은 의식이 없어서, 혹은 문화를 갖지 않아서, 혹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서 우리와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그런 동물을 맘대로 다루어도 괜찮다는 논리를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린지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그런 차이가 있다고 해도 그 차이가 과연 우리가 동물을 다루는 데 어떤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인종과 종교와 성과 국적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해도 되는가? 아니라면, 똑같은 논리가 왜 동물에게는 적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차별의 근거였던 차이를 도리어 특별한 도덕적 배려의 원리로 뒤집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동물신학과 윤리를 펼치는 린지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린지는 영국성공회의 신부이며 신학자이고 또한 작가이자 기독교 채식주의자이다. 현재 옥스퍼드대학교 신학부의 교수로 있으며 2006년부터 옥스퍼드 동물윤리 센터’(Oxford Centre for Animal Ethics)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앞서 살펴본 대로 현대 서구 지성사회에서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이론을 개척한 선구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76동물권 : 기독교적 평가라는 기념비적 저서를 출간한 이후, 1988년에 기독교와 동물권 Christianity and the Rights of Animals, 1994년에 동물신학 Animal Theology, 199년에 동물복음 Animal Gospel, 같은 해에 동물의례 Animal Rites, 그리고 2007년에 이 책의 원저인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 : 동물신학의 탐구 Creatures of the Same God: Explorations in Animal Theology등 수많은 책들을 출간한, 이 분야의 대표적인 신학자다.

린지의 많은 책들 가운데 특별히 이 책을 고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첫째로 이 책이 린지의 다른 많은 저서들의 주장을 핵심적으로 압축해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혹은 종교를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동물권을 둘러싸고 어떤 학술적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이고, 셋째로 이 분야의 주요저서들을 직접 소개해주어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길지 않고 흥미롭다. 이 책은 원서의 제목과 부제목을 바꾸어 출간한다. 아직 동물권이나 동물복지 혹은 동물해방에 대한 학계와 사회의 토론이 미약한 한국에서는 원서의 부제인 동물신학의 탐구를 역서의 제목으로 올리고 원서의 제목인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역서의 부제로 내리는 것이 독자들의 생경함과 이질감을 조금이라고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고심했다. 사실 번역을 하면서 린지의 매력에 더욱 끌리게 되었다. 린지는 열정적인 활동가이고 철저한 이론가지만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다. 그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도 있는 독선을 경계하며 동물에 관한한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는 겸손한 자세를 끝까지 일관한다. 그는 또 평화주의자다. 아무리 훌륭한 대의가 있어도 결코 폭력을 통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확고한 평화사상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동물 문제를 우리 시대의 사회적 의제로, 그리고 신학적 의제로 확실하게 부각시킨 세계적인 학자다. 뒤늦게나마 그의 책을 한국에 소개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동물에 대한 사회적이고 학술적인 담론이 아직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에 이 책이 작게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 먼저 이 책은 동물 문제를 아직도 신앙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복음은 인간에게만복음이었다.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뿐만 아니라 창조세계의 모든 생명, 특히 인간에 의해 오랫동안 학대 받아온 동물들에게도 기쁜 소식, 해방의 소식이 되어야 한다. 사실 이는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새들에게 복음을 설교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기억해보라. 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동물 문제에 관해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기독교 교리는 아직도 인간의 구원만 가르친다. 하지만 기독교의 구원자가 오직 인간만을 위해 죽었다고 주장하는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 사랑과 생명 정신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구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구약제사에 의해 희생되어 오던 동물들의 고통을 그치게 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속죄로 동물이 더 이상 피를 흘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면,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신학적으로 린지의 동물신학은 생태신학의 하나지만 기존의 생태신학에 도전한다. 이슈는 포식’(捕食, predation)의 문제이다. 먹고 먹힘의 먹이사슬을 생명 순환의 한 자연스런 요소로 볼 것이냐 아니면 타락한 세계의 일환으로 볼 것이냐가 이슈다. 린지에게 중요한 것은 자연의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장차 변할 자연이다. 그에게 자연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 여기에 대해 생태신학자들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아울러 린지의 동물신학은 기독교의 신정론(神正論, theodicy)도 다시 볼 것을 요구한다. 지금까지의 신정론은 인간의 고통과 악의 문제에만 집중해왔다. 하지만 인간이 경험한 악과 고통에 대한 기존의 신학적 설명이 과연 동물의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또한 이 책은 기독교를 넘어 한국 사회와 지성 사회 전체에도 기여하길 기대한다. 린지의 책은 린지와 동일한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하지 않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믿음을 전제하지 않고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린지의 주장에는 근대 휴머니즘,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의 격언 안에 함축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자는 주장이 함축되어 있다. 사실 동물에 대한 서구의 전통적 입장은 유대교와 고대 그리스 전통에서 유래하였고 이 둘은 기독교에 의해 통합되어 전해졌기 때문에 사실 동물의 문제는 곧 기독교 신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린지가 말하듯이 비종교적인 동물권 운동도 종교의 힘을 필요로 한다. 신앙은 바로 서면 - 도덕적 에너지를 창출한다. 동물권 운동에는 연민(compassion)이 필요한데 그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려면 종교의 힘을 필요로 한다. 타자를 인지하고, 타자의 고통을 상상하며, 자신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은 종교가 올바로 선 종교가 줄 수 있는 선물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기독교인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국민의 절반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 나라에서 이제 동물권에 대한 종교적 논의에도 귀 기울여 보는 것이 필요한 때가 되지 않았을까. 린지는 종교에 대해 아주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나는 모든 종교를 윤리적으로 테스트할 수 있는 기준이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 종교가 우리로 하여금 보다 더 사랑하고, 보다 더 자애롭고, 보다 더 연민하는 삶을 살도록 만드는가 혹은 아닌가 입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이 아닐가 생각한다. 한때 동물학대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지만 올바로 이해하면 오히려 기독교가 동물의 생명을 존중하는 최상의 논거를 제공할 수 있다는 린지의 글에서 독자들이 통쾌한 반전을 경험해보길 기대한다.

혹 동물권, 동물복지, 혹은 동물해방은 서구인들의 가치를 비서구인들에게 강요하는 문화제국주가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이나교나 힌두교나 불교는 아힘사곧 모든 생명에 대한 비폭력주의를 가르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조상들은 실생활에서 생명존중 사상을 실천하며 살았다. 까치를 위해 감을 다 따지 않은 까치밥’,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 떼어내 뭇 생명과 더불어 먹고자 한 고시래’, 콩을 심을 때 세 알을 심어 한 알은 새가 먹고 다른 한 알은 땅 속 벌레가 먹게 한 농부의 배려, 길을 나설 때 미리 지팡이로 땅을 쿵쿵 울려 벌레들이 도망하게 한 세심한 나그네의 배려, 하루 수십 리씩 걸어야 하는 소들을 위해 소장수들이 소에게 신겨준 쇠짚신’, 작은 생물이라도 해할까봐 뜨거운 물도 식혀 버렸던 어머니들의 세심한 살림살이, 소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은어를 사용하며 한순간에 소의 명줄을 끊고자 노력했던 백정들의 우직한 배려, 한 집안에서 더불어 먹고 사는 존재들을 사람이나 짐승을 가리지 않고 모두 생구(生口)라고 불렀던 포용적인 마음, 또한 불교의 영향을 받아 오랫동안 실천했던 채식위주의 삶... 동물권, 동물복지, 혹은 동물해방은 서구에서 수입된 의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상에 면면히 흘러왔던 아름다운 우리 것에 대한 반추인 것이다.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우리 인간이 경이로운 동물계의 일원임을 기꺼이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제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위해 일하자고 제안한다. 하나의 공통된 목표란 인간이 자연을 존중하고 그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며 살아가는 동안 삶의 자취(이른바 생태적 발자국’)를 너무 깊이 남기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그는 이제 우리 인간을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공생인’(共生人)으로 다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나는 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슬기로운 흙덩이의 새로운 이름이 되길 기대한다.

생태신학자 프란츠 알트(Franz Alt)는 만물 안에서 하나님을, 즉 동물과 식물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식하는 신비주의자들의 영성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한 동양의 신비주의자의 노래를 소개한다.

 

하나님은 별 속에서 주무시고

식물 속에서 향기를 발하시며

동물 속에서 꿈꾸시고

우리 인간 속에서 깨어나시려 하네

 

참 아름다운 노래이다. 신비주의란, 슈바이처에 의하면, 경외심을 가지고 생명에 대해 경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바로 이런 능력을 우리 인간이 회복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바로 이런 생명에 대한 깊은 감수성, 즉 영성이 절실하다. 사람에게 인권이 있다면 동물에게도 생명체로서의 권리, 즉 동물권이 있다. 인권은 동물권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동물권은 생명권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을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 다른 존재를 귀하게 여기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키워줘야 한다.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슬기로운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종교적 영성이 이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정해 준 대장간 출판사의 배용하 사장에게 정말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 책은 번역을 마치고 출판사를 찾는데 2년이나 소비해야 했다. ‘한국사회에서 5년은 앞서가는 책이라며 여러 출판사들이 주저했다. 그냥 땅에 묻힐 뻔했던 이 책을 살려내 이 땅 위에서 수난 당하는 동물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우게 해준 대장간 출판사의 배용하 사장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나의 제자 백인하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고통 받는 모든 생명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이 땅의 훌륭한 신학자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2014104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탄생일에

 

이화교정에서 장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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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 of Articles
도서명 저자명 번역자 출판년도 저서/번역서구분 출판사

도서명 마지널리티: 다문화시대의 신학 

저자명 이정용 

번역자 신재식 

출판년도 2014-12-05 

저서/번역서구분 번역서 

출판사 포이에마 

저자 이정용은 한국에서 태어나 6ㆍ25 전쟁 직후 미국에 건너가 핀들레이 대학과 개렛 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보스턴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오터바인 대학과 노스다코타 대학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가르쳤고, 1989년 이후 드루 대학교 조직신학 정교수로 재직하던 중 1996년 10월 9일 소천했다. 1971년에 풀브라이트 재단지원으로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1979년부터 미국종교학회 산하 북미한국인종교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드루 대학교 내 한국신학연구원을 창설했다. 서양 문화의 한복판에서 동양을 호흡하며 한국신학의 꽃을 피웠던 그는 삶의 정황과 맥락에서 경험한 것을 신학적으로 성찰하여 자기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신학을 정립했다. 그에게 있어서 신학이란 하나님이 자신의 삶과 자기 삶의 일부인 다른...

도서명 자크 라캉과 성서 해석: 정신분석학으로 성서 읽기 

저자명 강응섭 

번역자  

출판년도 2014-11-26 

저서/번역서구분 단독저서 

출판사 새물결플러스 

『자크 라캉과 성서 해석』은 프로이트(S. Freud, 1856-1939)와 자크 라캉(J. Lacan, 1901-1981)이 제시한 정신분석학 방법으로 루터(M. Luther)를 읽고 성서를 읽음으로써 인문학의 개념을 풍부하게 하여 신학과 인문학이 서로 대화하도록 안내한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라캉의 'L 도식'을 활용해 상상적 정체화와 상징적 정체화가 어떻게 변증법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주체의 내적 구조와 타자와의 관계가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목차 머리말 제1부 고전적 신학방법론 / 제1장 부정의 방법 제2장 긍정의 방법 제3장 유비의 방법 제4장 상관의 방법 제5장 역설의 방법 제2부 프로이트가 말하는 정체화 / 제1장 프로이트의 정체화 이론을 위한 인식론 제2장 됨의 정체화 제3장 가짐의 정체화 제4장 상호적 정체화 제3부 라캉이 말하는 정체화 / 제1장 라...

도서명 "이자익 목사의 영성과 리더십-- 해방후 한국교회 재건의 주역 이자익 평전" 

저자명 허호익 

번역자  

출판년도 2014-11-05 

저서/번역서구분 단독저서 

출판사 동연 

"이자익 목사의 영성과 리더십-- 해방후 한국교회 재건의 주역 이자익 평전" (동연, 2014.11, 17,000원, 419쪽) 추천사 “본 저자는 한국교회의 2대 인물로 해방 이전의 길선주 목사와 해방 이후의 이자익 목사, 이렇게 두 분으로 꼽았습니다. 한국교회의 기초와 그 틀을 잡으신 ‘길선주 목사’ 그리고 한국교회의 제2대를 이끌어나가는 영성과 리더십을 확고하게 다진 ‘이자익 목사’로 한국교회사를 양분하였습니다. 저자는 특히 이자익 목사에게 나타난 두 형태의 원리와 에너지를 연결시키고 동량(棟樑)하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곧 머슴에서 한국교회의 거대 인물로, 영성과 리더십, 치리와 도전, 개척과 혁신, 영성과 조직, 이런 사크라멘트적 연계가 엄청난 자료들로 시위되고 있고, 그런 것을 한국교회의 실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사의 참신한...

도서명 구원의 허리를 동이고 

저자명 김성원 

번역자  

출판년도 2014-09-10 

저서/번역서구분 단독저서 

출판사 꽃자리 

목차 서문: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주의 구원으로 허리를 동입니다 제1장 구원이란 ? 1. 구원의 의미는? 구약성경의 구원 / 신약성경의 예수님이 보여주신 구원 / 예수님의 구원의 강조점 2. 구원을 얻는 방법은? 구약의 율법을 통한 구원 / 신약의 예수님을 통한 구원 Q&A 구원에도 순서가 있나? 제2장 죄를 회개함 1. 죄란 무엇인가? 죄의 본질 / 죄의 결과 / 원리로서의 죄, 인간본성으로서의 죄 / 죄의 종류 / 죄는 미워하시나 죄인은 사랑하시는 하나님 Q&A 기독교는 죄에 대해서 왜 이렇게 예민한가? 내가 만난 기독교인들은 죄에 대해서 조심하지 않던데?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나? 2. 회개란 무엇인가? 죄로 인해 근심하는 회개 / 죄에 대하여 생각을 바꾸는 회개 / 죄를 자백하는 회개 / 죄로부터 돌아서는 회개 | 죄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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